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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터널 선샤인
Afternote/movie
2005/11/25 10:29

작년 즈음부터 극장앞에 팜플렛이 놓여있었던 이 영화.
팜플렛 디자인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특이한 팜플렛에 비해 거기 적혀 있는 줄거리는 너무 상투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루나언니나 Hope님의 감상을 본 다음에는 글쎄 좀 아련한 영화겠구나_ 이런 느낌이었다. 다만 상투적으로 보이는 얘기인데, 찰리 카우프만이 각본을 썼다는게 좀 마음에 걸렸었다. 그 사람은 보통 전혀 뻔하지 않은 얘기들을 하지 않던가. :)
이 영화의 장르에 대해서는 논란이 좀 있는 것 같다 (SF인가 혹은 멜로인가), 그렇지만 난 굳이 따지자면 멜로라고 생각한다. 사실 SF에 대해 잘 모르지만, SF라고 하기에는 '과학'의 비중도 근거도 너무 빈약해서.
멜로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기에 원래 이 영화를 볼 생각은 없었다. 시간도 안보고 무작정 갔는데 보려던 것 중에 시간이 맞는 영화가 없더라. 사실 한 시간 반을 기다리려고 작정하고 다른 영화 표를 끊었었지만, 랜드 시네마 주변엔 정말 놀 것이 없었다. 차라리 용산 cgv를 갈 걸 하는 후회도 했음. 그래서 주변의 몇몇 사람이 보고서 괜찮다고 써놓은 것 같길래, 이걸 보기로 했다.
소감은 '역시 찰리 카우프만' 이었달까.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서 각본을 누가 썼는지를 생각한 건 거의 처음이었지만, 정말 그 사람의 느낌이 났다.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각본가가 누군지 생각나지 않았지만, 같은 사람이란 느낌은 확실했다. 이 영화에서 기억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 그 영화에서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있을 때와 비슷하게 묘사되었다. '말코비치 되기' 를 무척 좋아했던 나로서는 반갑기도 했고, 한편 감상적으로만 흐를 수 있는 상황을 저렇게 묘사해준 게 기쁘기도 했다.

「You know, you will think of things and I'll get bored with you and feel trap because that's what happens with me!」
「...okay!」「...okay!」
(그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한번 더 상처받는다면, 그 상처는 첫 번에 비해 덜 아플까?
그렇건 아니건 나중의 일이니까, 일단 지금은 현재의 감정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일까? )
「...okay!」「...okay!」
(그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한번 더 상처받는다면, 그 상처는 첫 번에 비해 덜 아플까?
그렇건 아니건 나중의 일이니까, 일단 지금은 현재의 감정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일까? )
영화 내용에 대한 감상은 대충 미뤄두기로 하자.
누군가는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서야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는게 무척 씁쓸했다' 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그 사람들이 무척 유치하고, 자기 만족을 위한 악의가 가득한 말이 담긴 그 테잎들을 듣고서도 다시 한번 더 시도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는게 더 신기했다.
그리고 그 연인들보다, 지나간 시간을 똑같이(?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되풀이한 커스틴 던스트나, 여자친구의 옛 애인의 기억에 의존해서 연애를 해보려고 노력하던 엘리야 우드가 더 불쌍했다.
요즘 보고 있는 '프라하의 연인'이 '헤어진 사람들은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라는 말에 무게를 실어준다면, 이 영화는 '아무려면 어때' 라는 느낌을 주었다. 사실 '추억의 소중함' 같은 건 그 추억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에겐 금방 잊혀져 버렸나 보다.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마음이 무척 찡했었지만 말이다.
지난 주 토요일 이걸 보고 돌아와서는 오래 전에 아무 생각없이 보려고 했었던 'Serendipity'를 새벽까지 보았다. '프라하의 연인'도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ROME은 감탄하면서 보고, 프라하의 연인은 재미있게 본다) 리얼세계에서 요즘 그런일과 관계가 없어서 그런지, 질려버려서 그런지, 요즘에는 멜로물에 거부감이 거의 없어진 것 같다. 나름 신선한 현상이다.
2005년의 영화 그 38번째